해외표류기

일잘러의 최후; 희노노노노노노애락 - 퇴사 이야기 2

♼〠☡♔♕♖♛ 2025. 2. 12. 12:14
반응형

유라보

스스로에게 묻는다.
나는 지금, 즐거운가?

매 순간, 매일. 심장이 뛴다는 건 병이라고, 병원에 가야 한다고들 한다.
하지만 나는 일주일에 하루, 아니 한 달에 하루라도
뒤돌아봤을 때 ‘그래, 오늘은 즐거웠다’라고 느끼며 살고 싶었다.
그리고 그렇게 살아왔던 것 같다.

그런데… 일은 일이다.
일상을 일과 연결 짓지 말고, 퇴근하는 순간 온오프를 연습해야 한다고
많은 동료들이 조언해주었다.


그런 말을 듣는다는 건, 내가 온오프가 잘 안 되는 사람이란 뜻이겠지.

맞다. 온오프가 되지 않았다.
아파도 일을 했고, 일을 끝내고 병원에 가거나 새벽 응급실을 다녀온 뒤 출근하는 게 익숙했다.

누구도 나에게 강요하진 않았다. 하지만 우회적으로 강요했다고 생각한다.

 

"XX한테 맡기면 캠페인 빵꾸 안 나."
"XX가 할 거야."
"XX가 잘하잖아."

그렇게 수없이 들어온 말들.


그 ‘죽일 놈의 책임감’이 나를 갉아먹고 있었다는 걸 알면서도 쉽게 놓을 수 없었다.

프로젝트는 광고주와 고객과의 약속이고, 내 사전에 ‘딜레이’는 없었다.
내 손에 들어온 프로젝트는 어떻게든 처음부터 끝까지 완벽하게 마무리한다.
그 자부심 하나로 여기까지 왔다.

 

지금 돌아보면, 참 무식한 마음가짐이었다.
휴가를 가도, 병가를 내도 끊임없이 울리는 문자와 전화.
한 번쯤 무시했더라면
"괜찮아, XX는 휴가나 병가 중이어도 연락되잖아."
"연락해도 돼."
그런 인식을 심지 않았을 텐데. 왜 이렇게 되었을까?

이런 마음가짐은, 특정 회사에서 특히 심해졌다.
이름을 밝힐 수는 없지만, 그곳은 인적 리소스가 부족했고, 한 사람이 여러 가지 일을 해내야 했다.

 

나는 디자이너도, 개발자도 아닌데 어느 순간 인터넷을 뒤지고, 주변에 묻고,
하나하나 스킬을 익혀가고 있었다. PM으로서 내 공백을 메워줄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 정도로 사람이 부족한 회사였고, 그럼에도 새 인력을 붙여주거나 채용하지 않은 건 결국 비용 문제였다.

그리고 사람들은 말했다.
"XX니까 할 수 있어. 잘하잖아." 그 말이 무서운 인식으로 자리 잡으며,

 

나는 점점 시름시름 아파갔다.희로애락 중에서,
나는 점점 ‘노노노노노노’가 가득한 사람이 되어갔다. 화가, 너무 쉽게 나는 사람이 되어버렸다.

그리고 그 화가 미간에 깊이 새겨졌다.
인상이 달라지고, 말투가 바뀌고, 몸가짐마저 변해갔다.

그걸 깨닫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온몸이 망가지고 나서야,
초점 없는 눈으로 거울을 보며 칫솔질하는 나를 마주했다.
그 순간, 퇴사를 결심했다.

 

아파서 그렇게 수없이 병원을 드나들면서도
단 한 번도 ‘퇴사’라는 선택지를 떠올리지 않았던 나.

그런 내가,


공허한 눈으로 거울을 마주하고
미간에 깊이 새겨진 ‘내’ 자를 보며
왜 퇴사를 결심했을까?

 

그 이야기는 다음 편에서 풀어볼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