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해외표류기

외노자 삶, 드라마틱한 새해맞이: 새벽에 혼자 응급실 찾아가기 (짠내주의)

by ♼〠☡♔♕♖♛
반응형

외국에서 응급실

 

어디에 살고 있든 혼자 살면서 가장 서글픈 순간은 아플 때인 것 같다.

 

아파서 새벽에 울며 택시를 잡았던 경험은 정말 오랜만이었고, 명절 설날에 아파서 서러운 마음에 친구에게 푸념했던 지난날이 떠오른다. 

 

코로나가 터진 이후 정말 많이 아프지 않은 이상 병원을 가는 게 좀 꺼려졌었다. 무조건 예약을 해야만 갈 수 있고 백신 접종 여부, 해외 출입국 여부, 체온 등 여러 가지를 확인 이후에 병원 내방 예약이 가능하다. 병원에 발을 들이는 것조차 여러 가지 정보를 재확인해야지만 의사를 만날 수 있기에 아프면 무조건 병원 간다는 생각에서 건강하고 웬만하면 병원은 가지 말자는 생각으로 변화하여 병원 내원은 Pre covid와 Post covid로 나눌 수 있을 것 같다.

 

어렸을 때는 아프다고 부모님께 연락을 했지만, 이제는 내가 아프다고 해도 바로 와줄 수 없다는 걸 알기에, 괜히 걱정만 시키지 않으려고 웬만하면 병이 다 나은 후에야 왜 그동안 연락이 뜸했는지 말한다. 지금 생각해보면 경제적으로 독립하기 전이라 병원비를 부모님 카드로 결제할 때, 병원에 갔다고 하면 놀라실까 봐 미리 말하지 않았던 내 자신이 철이 없었던 것 같다.

 

그럼 본론으로 넘어가서, 몸살인가 싶어 비상약을 먹고 잠을 청했지만, 몸살 기운은 오한으로 번지며 식은땀과 함께 헛구역질이 나오면서 신물이 올라오는 지경까지 갔다. 적당히 약 먹고 자고 일어나서 아침에 병원에 가야겠다고 생각했지만 잠은 오지 않았고, 몸 상태는 점점 안 좋아지는 것 같았다. 새벽 2시까지 버티다 도저히 안 될 것 같아 검색을 시작했다. 집 근처 큰 병원이나 응급실이 있는 병원을 찾기 시작했는데... 아, 나는 코로나를 잊고 있었네... 응급실도 예약을 받는다는 걸... 이곳저곳 전화하고 확인한 끝에 예약 없이 walk-in 가능한 병원을 하나 찾았다. 그리고 택시를 잡기 시작했다. 하필 아픈 날이 공휴일이라 택시도 안 잡히고 공유차량도 찾기 어려웠다. 그렇게 1시간 씨름 끝에 택시 예약에 성공했지만, 왜 차가 집에서 40분이나 걸리는 거지?... 예약 취소하고 싶었지만 빠른 배차를 받을 수 있을지 몰라 취소 버튼을 누르지 않고 기다렸다. 새벽 3시, 목적지가 병원 응급실이었는데, 택시 기사님이 얼굴을 보시더니 아버지뻘인 분이 연신 괜찮냐고, 혼자 사냐고 걱정해주셨다. 외국인이냐며 병원 진료 후 택시를 못 잡으면 연락하라고 명함을 주시기까지 했다. 아프고 서러운 마음에 더더욱 감사함이 밀려왔다.

 

병원에 도착했을 때, 코로나가 완전히 종식되지 않았기에 병원 건물 한 켠에 임시 천막을 치고 응급환자를 보고 있었다. 체온 체크와 코로나 PCR 검사를 하고, 검사 결과를 기다리는 동안 더욱 서러워졌다. 그때 병원 관계자가 내 이름을 불렀고, 신분증을 확인한 후야 비로소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싱가포르 응급실싱가포르 응급실싱가포르 응급실

 

그리고 의사를 만나 간단하게 어디가 불편한지 설명했다. 그러더니 갈아입을 옷을 주며, 간이 마련된 화장실에서 병원복으로 갈아입으라고 했다. 입원해야 하나 싶어 물어보니, 폐 CT를 찍기 위한 준비라고 하며, 자세한 설명 없이 화장실로 밀어 넣었다. 옷을 갈아입고 나오자, 또 한참을 플라스틱 의자에 앉아 대기하다가, 토할 것 같아서 간호사에게 이야기했다. 그러자 쓰레기통 하나와 구토 억제 약을 주며 구석으로 자리를 옮기라고 했다. 아프지 않고 건강한 게 가장 중요하다는 걸 절실히 느낀 날이었다.

싱가포르 응급실싱가포르 응급실싱가포르 응급실

 

그리고 폐 CT 결과가 나올 때까지 플라스틱 의자에 앉아 대기하다가, 결과가 나오고 나서야 의사를 만날 수 있었다. 다른 부위에는 이상이 없고, 면역력이 안 좋아서 요즘 무리한 거 아니냐며, 스트레스가 있었는지, 밥은 무엇을 먹었는지 물어보더니, 토하고 밥도 안 먹었으면 탈수 증상이 있을 수 있다고 하며 영양제를 하나 맞자고 했다. 손등에 주사를 놓은 후, 의사는 사라졌다. 침대는 보이지 않았고, 추운 새벽에 병원복 같은 얇은 옷을 입고 플라스틱 의자에 앉아 링거를 맞게 될 줄은 상상도 못했다...

 

그렇게 링거 한 팩을 다 맞고 나니까, 무엇인지도 기억나지 않는 팩 3개를 들고 와서 바꿔주는데, 피곤하고 힘들고 아프고 춥다는 생각에 도저히 못 참겠다고 하니 침대 시트를 주면서 덮으라고 했다. 그때 헛웃음이 나왔다.

 

하하하하

싱가포르 응급실싱가포르 응급실

 

 

참, 다이나믹한 새해의 시작이구나 싶을 때쯤, 서서히 오한은 사라지고 열도 내려가며 구토 증세도 없어졌다. 그때 간호사가 알약 몇 개를 가져오더니 물과 함께 건네주었다. 그리고 내 손과 플라스틱 의자 옆에 주렁주렁 달린 3개의 약 팩을 다 맞을 때쯤, 의사가 다시 와서 몸 상태가 어떤지 물어보았다. 내가 좀 괜찮아졌다고 하니, 약 처방과 병가에 쓸 수 있는 진료확인서를 적어주겠다며 잠시 기다리라고 하고 또 사라졌다.

 

병원 서비스와 질은 한국보다 훨씬 낮았지만, 병원비는 어마어마했다. $1000, 즉 약 100만 원을 결제하고 약 몇 가지를 들고 퇴원 절차를 마친 후, 아침 6시가 될 무렵 병원비를 지불하고 택시를 잡아 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입원도 하지 않았는데, 그저 천막으로 임시 마련된 응급실에서 플라스틱 의자에 앉아 있었던 것 같은데, 병실 입원비까지 청구받는 양심 없는 병원비였다.

 

병원: 응급실 (코로나 이후 병원 가는 과정이 복잡해짐)

병원 진료 과정: 코로나 검사 → 음성 확인 → 임시 응급실 입장 → 의사 및 간호사 만남 → 링거 + 약 → 병원비 지불 → 처방 받은 약 수령 → 귀가

병원비: $1207 (구급차를 부르지 않은 이유... 돈... )

 

결론: 아프지 말고 건강하자.

 

 

싱가포르 응급실싱가포르 응급실

 

 

아프지 말고 건강해야지! 올해 액땜했다고 생각하고 서글픈 마음은 접어두고, 병원에서 처방받은 약 한 봉 먹고 잠을 청했던 나의 설날.

 

수고했어, 셀프 토닥 후 굿나잇.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