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에 살고 있든 혼자 살면서 가장 서글픈 순간은 아플 때인 것 같다.
아파서 새벽에 울며 택시를 잡았던 경험은 정말 오랜만이었고, 명절 설날에 아파서 서러운 마음에 친구에게 푸념했던 지난날이 떠오른다.
코로나가 터진 이후 정말 많이 아프지 않은 이상 병원을 가는 게 좀 꺼려졌었다. 무조건 예약을 해야만 갈 수 있고 백신 접종 여부, 해외 출입국 여부, 체온 등 여러 가지를 확인 이후에 병원 내방 예약이 가능하다. 병원에 발을 들이는 것조차 여러 가지 정보를 재확인해야지만 의사를 만날 수 있기에 아프면 무조건 병원 간다는 생각에서 건강하고 웬만하면 병원은 가지 말자는 생각으로 변화하여 병원 내원은 Pre covid와 Post covid로 나눌 수 있을 것 같다.
어렸을 때는 아프다고 부모님께 연락을 했지만, 이제는 내가 아프다고 해도 바로 와줄 수 없다는 걸 알기에, 괜히 걱정만 시키지 않으려고 웬만하면 병이 다 나은 후에야 왜 그동안 연락이 뜸했는지 말한다. 지금 생각해보면 경제적으로 독립하기 전이라 병원비를 부모님 카드로 결제할 때, 병원에 갔다고 하면 놀라실까 봐 미리 말하지 않았던 내 자신이 철이 없었던 것 같다.
그럼 본론으로 넘어가서, 몸살인가 싶어 비상약을 먹고 잠을 청했지만, 몸살 기운은 오한으로 번지며 식은땀과 함께 헛구역질이 나오면서 신물이 올라오는 지경까지 갔다. 적당히 약 먹고 자고 일어나서 아침에 병원에 가야겠다고 생각했지만 잠은 오지 않았고, 몸 상태는 점점 안 좋아지는 것 같았다. 새벽 2시까지 버티다 도저히 안 될 것 같아 검색을 시작했다. 집 근처 큰 병원이나 응급실이 있는 병원을 찾기 시작했는데... 아, 나는 코로나를 잊고 있었네... 응급실도 예약을 받는다는 걸... 이곳저곳 전화하고 확인한 끝에 예약 없이 walk-in 가능한 병원을 하나 찾았다. 그리고 택시를 잡기 시작했다. 하필 아픈 날이 공휴일이라 택시도 안 잡히고 공유차량도 찾기 어려웠다. 그렇게 1시간 씨름 끝에 택시 예약에 성공했지만, 왜 차가 집에서 40분이나 걸리는 거지?... 예약 취소하고 싶었지만 빠른 배차를 받을 수 있을지 몰라 취소 버튼을 누르지 않고 기다렸다. 새벽 3시, 목적지가 병원 응급실이었는데, 택시 기사님이 얼굴을 보시더니 아버지뻘인 분이 연신 괜찮냐고, 혼자 사냐고 걱정해주셨다. 외국인이냐며 병원 진료 후 택시를 못 잡으면 연락하라고 명함을 주시기까지 했다. 아프고 서러운 마음에 더더욱 감사함이 밀려왔다.
병원에 도착했을 때, 코로나가 완전히 종식되지 않았기에 병원 건물 한 켠에 임시 천막을 치고 응급환자를 보고 있었다. 체온 체크와 코로나 PCR 검사를 하고, 검사 결과를 기다리는 동안 더욱 서러워졌다. 그때 병원 관계자가 내 이름을 불렀고, 신분증을 확인한 후야 비로소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그리고 의사를 만나 간단하게 어디가 불편한지 설명했다. 그러더니 갈아입을 옷을 주며, 간이 마련된 화장실에서 병원복으로 갈아입으라고 했다. 입원해야 하나 싶어 물어보니, 폐 CT를 찍기 위한 준비라고 하며, 자세한 설명 없이 화장실로 밀어 넣었다. 옷을 갈아입고 나오자, 또 한참을 플라스틱 의자에 앉아 대기하다가, 토할 것 같아서 간호사에게 이야기했다. 그러자 쓰레기통 하나와 구토 억제 약을 주며 구석으로 자리를 옮기라고 했다. 아프지 않고 건강한 게 가장 중요하다는 걸 절실히 느낀 날이었다.
그리고 폐 CT 결과가 나올 때까지 플라스틱 의자에 앉아 대기하다가, 결과가 나오고 나서야 의사를 만날 수 있었다. 다른 부위에는 이상이 없고, 면역력이 안 좋아서 요즘 무리한 거 아니냐며, 스트레스가 있었는지, 밥은 무엇을 먹었는지 물어보더니, 토하고 밥도 안 먹었으면 탈수 증상이 있을 수 있다고 하며 영양제를 하나 맞자고 했다. 손등에 주사를 놓은 후, 의사는 사라졌다. 침대는 보이지 않았고, 추운 새벽에 병원복 같은 얇은 옷을 입고 플라스틱 의자에 앉아 링거를 맞게 될 줄은 상상도 못했다...
그렇게 링거 한 팩을 다 맞고 나니까, 무엇인지도 기억나지 않는 팩 3개를 들고 와서 바꿔주는데, 피곤하고 힘들고 아프고 춥다는 생각에 도저히 못 참겠다고 하니 침대 시트를 주면서 덮으라고 했다. 그때 헛웃음이 나왔다.
하하하하
참, 다이나믹한 새해의 시작이구나 싶을 때쯤, 서서히 오한은 사라지고 열도 내려가며 구토 증세도 없어졌다. 그때 간호사가 알약 몇 개를 가져오더니 물과 함께 건네주었다. 그리고 내 손과 플라스틱 의자 옆에 주렁주렁 달린 3개의 약 팩을 다 맞을 때쯤, 의사가 다시 와서 몸 상태가 어떤지 물어보았다. 내가 좀 괜찮아졌다고 하니, 약 처방과 병가에 쓸 수 있는 진료확인서를 적어주겠다며 잠시 기다리라고 하고 또 사라졌다.
병원 서비스와 질은 한국보다 훨씬 낮았지만, 병원비는 어마어마했다. $1000, 즉 약 100만 원을 결제하고 약 몇 가지를 들고 퇴원 절차를 마친 후, 아침 6시가 될 무렵 병원비를 지불하고 택시를 잡아 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입원도 하지 않았는데, 그저 천막으로 임시 마련된 응급실에서 플라스틱 의자에 앉아 있었던 것 같은데, 병실 입원비까지 청구받는 양심 없는 병원비였다.
병원: 응급실 (코로나 이후 병원 가는 과정이 복잡해짐)
병원 진료 과정: 코로나 검사 → 음성 확인 → 임시 응급실 입장 → 의사 및 간호사 만남 → 링거 + 약 → 병원비 지불 → 처방 받은 약 수령 → 귀가
병원비: $1207 (구급차를 부르지 않은 이유... 돈... )
결론: 아프지 말고 건강하자.
아프지 말고 건강해야지! 올해 액땜했다고 생각하고 서글픈 마음은 접어두고, 병원에서 처방받은 약 한 봉 먹고 잠을 청했던 나의 설날.
수고했어, 셀프 토닥 후 굿나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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